음악이야기/기획2011. 1. 4. 14:54
어느덧 2010년도 다 지나갔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만큼, 국내외로 좋은 흑인음악 앨범들도 많이 나와줘서 귀가 호강했던 한 해였기도 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연말 시상식들에 비해 가진 거라곤 비루한 블로그 하나뿐인 본인은, 언급한 연말 시상식들과 정면승부를 펼칠 자신이 없어 측면승부를 펼치기 위하여 조금 늦게나마 2010 블랙뮤직 어워드를 발표하기로 했다. (절대 뒷북이 아니다.)

본격 1문단 리뷰를 지향하는 블로그인 만큼, 최대한 간소하게 시상하기로 했다.


1. 올해의 앨범상

[Get Real] by Deez

디즈의 정규 1집 [Get Real]을 다 듣고 난 뒤 든 생각은, "아마 올해 안으로 이걸 뛰어넘는 명작이 나오긴 힘들겠구나" 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이 앨범은 제목 그대로 "레알" 이다. 흑인음악의 불모지인 이 땅에서 이러한 감각을 가진 뮤지션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서프라이즈에 방영될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오프너이자 킬링트랙인 "Soul Tree" 부터 맥스웰과 라싼 패터슨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Makin' Love" 와 타이틀곡 "Sugar" 까지, 하나하나 보물이다. 게다가 이 사람, 네오소울 뿐만이 아니라 트렌디한 R&B도 할 줄 안다. 이상한 연예인들 말고 이 사람 병역 좀 면제해주면 안되나? 내가 대신 갈게. 아, 나 어차피 가야되는구나...


2. 올해의 뮤지션상

브라운 아이드 소울

비록 앨범에는 혹평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2010년 내내 꾸준히 "미친 존재감" 을 발산해 온 뮤지션은 브라운아이드소울이 유일무이하다. 올해 초 나얼의 소집해제와 함께 컴백 분위기를 슬슬 풍기기 시작하더니, 3월, 5월, 7월에 싱글을 발매하고, 6월에 콘서트를 하고, 11월에 정규 앨범을 내고, 현재는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이어지는 대규모의 전국투어 공연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라디오 출연까지 했다. 3,4년에 한번씩 찔끔찔끔 앨범 내고, 찔끔찔끔 공연 몇 번 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1년 내내 잊을래야 잊혀질 새가 없었다. 희소성이 떨어지니 뭐니 해도 리스너의 입장에서는 활발히 활동하면 할수록 더 좋은 법. 이들의 꾸준한 활동 덕분에 올 한 해를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쭉 한국 흑인음악계의 확고부동한 레전드 그룹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3. 올해의 싱글상

[Coming Home] by Soulciety

소울사이어티의 귀환은 정말이지 눈물나게 반가웠다. 하지만 첫 싱글인 [Urban Jammin']은 이러한 필자의 기대를 한 순간에 짓밟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만큼 최악...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실망스러웠다. 이후 3개월만에 발표된 새로운 싱글 [Coming Home]은 전작이 안겨준 실망감을 말끔히 씻어버렸다. 70년대의 멜로스무드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서정적인 클래식 소울 발라드로, 요즘 메인스트림 음악에서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는 각 세션들의 섬세한 연주를 최대한 표현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기타 연주는 "이거 보컬 없이 기타로만 가도 되겠는데?" 란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폭풍감동이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아는 소울사이어티의 음악이지. 옛다, 올해의 싱글상!


4. 올해의 루키상

시크

올해에도 많은 흑인음악 뮤지션들이 등장했지만, "시크(Chic)" 는 개중 단연 돋보인다. 소울을 기반으로 재즈와 팝의 요소들을 적절히 버무린 이들의 음악은, 홍보만 잘 따라준다면 2009년에 인기를 끌었던 어반 자카파만큼이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충분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경쾌한 분위기의 첫 곡인 "습관처럼" 은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흑인음악 특유의 끈적함을 배제하고 정갈한 연주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중독성 있는 훅으로 무장하고 있어, 일반 대중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법한 곡이다. 반면 소울맨이 참여한 "Lovey" 에서는 정반대의 끈적끈적한 슬로우잼을 연출하며 유연성을 뽐내기도 한다. 올해에는 또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기대되는 루키이다.


5. 올해의 콜라보상

[Mind Combined] by 진보 & PeeJay

1월, 힙합색이 짙게 드리운 네오소울을 담은 정규앨범인 [Afterwork]를 발매한 진보.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3월에는 프로듀서인 피제이와 손잡고 [Mind Combined]라는, 색종이를 찢어 붙인 듯 뭔가 제목만큼이나 메타피지컬한 커버를 앞세운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사실 진보나 피제이나 "언더그라운드 작곡계의 미친 존재감" 정도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이 앨범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줏대 있는 음악이 나오는 게 가능하구나" 라는 감탄사와 함께 폭풍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앨범이 나올 당시 필자는 몽골에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약 한 달간 "Something's Better" 와 "Body Groove" 를 귀에 달고 살았다. 힘겨운 타지 생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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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lighter